홍경래의 난에 담긴 평안도 차별

순조 11년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판도정치 시대의 조선. 평안북도 가산군에서 홍경래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농민 항쟁, 이른바 ‘홍경래의 난’이 발발했습니다. 지난 10년이라는 긴 시간의 준비 끝에 폭발해 버린 난은 기세 좋게 각지로 퍼져 나갔으나 결국 양력 1812년 5월 29일 난 발발 약 4개월 만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홍경래와 관군 간 전투를 담은 순무영 진도(ⓒ세계일보)

◇ 여러분은 ‘홍경래의 난’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홍경래의 난’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혼란스러운 조선 후기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일으킨 반란 중 하나. 대부분은 아마 이 정도면 끝날 것 같아요. 하지만 홍경래 난의 배경에는 평안도에 대한 차별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 유서 깊은 평안도민 차별

평안도에 대한 차별은 조선 내에서 생각보다 꽤 긴, 그리고 집요하게 계속되었습니다.조선 후기 실학자, 이 중환(이·쥬은화은)가 펴낸 “집 사토시”은 당시 조선 팔도의 지리적 특성, 생활 양식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인문 지리서입니다.택지로 당시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이익만을 기준으로 거주지를 정하려는 풍조가 있었을 정도로 택지의 가진 영향력은 굉장했어요.그러나, 택지는 단순히 지역의 특성만 담은 책이 아닙니다.테크 릿지에서는 “사대부”의 역사와 생각, 그리고 그들에게 이·쥬은화은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이하는 집리 저수지에서 언급된 당시의 조선 사대부들이 바라보는 서북인에 대한 인식을 기술한 부분입니다.평안도는 300년 이후 관직에 오른 사람이 없었다.만약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더라도 관직은 현령에 불과했다.서울의 양반은 서북 사람과 결혼하거나 친구가 되기를 꺼린다._”태그 리지”이쥬은 팬

평안도에 대한 차별은 조선 내에서 생각보다 상당히 길고 집요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는 당시 조선 팔도의 지리적 특성, 생활양식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인문지리서입니다. 택지로 인해 당시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이익만을 기준으로 거주지를 정하려는 풍조가 있었을 정도로 택지가 갖는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택지는 단순히 지역의 특성만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테크리지에서는 ‘사대부’의 역사와 사고방식,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준환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아래는 택리지에서 언급된 당시 조선사대부가 바라보는 서북인에 대한 인식을 기술한 부분입니다. 평안도는 300년 이래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었다. 만약 과거에 급제한 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관직은 현령에 불과했다. 서울 양반들은 서북 사람과 결혼하거나 친구가 되기를 꺼린다._’타그리지’ 이준환

△이준환의 ‘테크리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북 지역은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의 3지역을 의미하며 이들 지역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차별을 계속 받고 왔습니다.이러한 서북 지역 차별의 원인은 크게 지리적 위치에 있습니다.서북 지역에서 평안도는 만족의 침입을 많이 받은 한반도 북쪽의 변방에 위치합니다.또 평안도는 농업이 발달하지 않을 만큼 땅이 거칠고 있어 양반은 여기에서 거주를 피하곤 했습니다.그 결과, 양반들을 중심으로 한 당시 조선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이 제대로 보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존재했습니다.이를 이유로 평안도는 수준이 떨어지고 향촌 질서가 흐트러지는 장소로 다루어졌습니다.이처럼 유교 문화의 변방이었던 평안도에 대한 다른 지역의 반감이 커진 것은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차별에 차별을

다른 지역에서는 평안도를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평안도 사람들과는 친구도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평안도 사람들은 천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에 접근조차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안도에 대한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헤이안도인에 대한 당시 인식(ⓒ역사저널 그날)차별은 단순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평안도 출신 사람들은 높은 벼슬을 하지 못했습니다. 평안도 출신의 문신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도 성리학과 향촌 질서가 성숙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의 외교문서를 담당하던 관청인 승문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참상관이 된 후에도 추천을 받지 못하고 권위 있는 관직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경제적 수탈까지 당한 평안도의 모습 재연(ⓒ역사저널 그날)평안도민은 정치적 차별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탈까지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세도정치 시기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군사비와 접대비 충당 명목으로 청나라에 가장 가까웠던 평안도 곡식을 수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18세기 중반부터는 중앙재정이 부족해지자 가장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평안도의 재정을 끌어다 쓰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반란의 불씨몰락한 양반 출신 홍·교은레도 과거 시험을 몇 차례 받았지만 매번 낙선하고 평안도 차별에 대한 그의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갔습니다.설상가상으로 1809년에는 100년 이후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지만, 탐관오리의 횡포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결국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모아 양력 1812년 1월에 난을 일으켰습니다.홍 경래의 난은 불과 10일 평안 북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할 만큼 거셌지만 정 주 성 전투에서 관군에 패해진압당했습니다.단 5개월의 싸움이었지만 홍·교은레의 난은 백성이 사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싸움이었습니다.홍 경래의 난은 이후 조선 각지에서 발생한 농민 봉기의 시작도 되었습니다.◇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평안도에 대한 끈질긴 차별의 역사가 평안도민들에게 ‘반란’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 평안도는 북한에 속해 있으며 북한 내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지역입니다. 평안도는 역사적으로나 현재나 중국과의 무역에서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통일 한반도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 한반도라고 해서 과거와 같은 차별이 발생하지 않냐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통일한반도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IUSS caster)현재 대한민국 내에서도 지역 감정이 심한 곳이 존재합니다.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유 등으로 우리는 몇 십년이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습니다.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남·호남 지역 갈등이 있습니다.그 갈등은 정치적 이유에서 발생하고 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기인한 문제입니다.오로지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비방하는 공격적 행위는 결코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만약 통일이 되면 이런 지역 감정은 지금보다 훨씬 심해지면 심해지면서 절대 줄지는 않죠.그 때는 평안도 차별이 아니라 한국과 북한으로 나뉘어 심각한 지역 갈등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닥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서로의 인식 격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여기에는 긴밀한 협력과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의 남북 관계에 있어서 이를 실행하려면 어려움이 따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문화를 체험하거나 탈북자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며 내적 거리감을 좁힐 필요가 있습니다.과거 같은 갈등의 역사를 다시 한번 반복하지 않으면 처음 통일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할 겁니다.<참고 자료>네이버 블로그.2018년 5월 23일 역사 저널그 날 제23대 순조-저항의 시대를 열어(2):지역 차별과 수탈의 대상이었다”평안도”. https://m.blog.naver.com/sheshow/221245679465(검색 일:2023년 10월 19일)한국 역사 네트2011.신편 한국사.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6_0040_0010_0010_0010 .(검색 일:2023년 10월 19일)우리 역사 네트2011. 영문 한국사.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h/view.do?levelId=kh_001_0060_0030_0040 .(검색 일:2023년 10월 19일)김·독규은. 2022년 소외 차별된 조선 서북 지역 효 문화 특징 연구.85-113. 충남대 유학 연구소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990086(검색 일:2023년 10월 19일)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게시일).홍 경래의 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948#cm_multimedia .(검색 일:2023년 10월 19일)권·률 2016년 10월 24일 폰·교은레는 죽지 않았다.머니 투데이.https://news.mt.co.kr/mtview.php?no=2016102011080523481&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검색 일:2023년 10월 19일)오·스챠은. 2008. 조선 시대 평안도 출신 문신에 대한 차별과 통청.15, 45-78.한국문화연구,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14297 .(검색일:2023.10.19.)KBS역사저널그날.2019년 6월 7일 영상 한국사 I240폰·교은레의 난-평안도에서 시작된 저항의 불씨.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vMfJIF-cuLM&t=168s .(검색 일:2023년 10월 20일)티칭 백과.(게시일).홍 경래(홍·교은레)의 난(1811).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2865&findCategory=B002005&findBookId=23 .(검색일:2023.10.20.)우리역사넷.2011. 홍 경래(홍·교은레)농민 봉기의 문을 연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eh/view.do?levelId=eh_n0621_0010 .(검색일:2023.10.20.)KBS WORLD. 2012.10.13. 홍경래의 난.https://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k&menu_cate=history&id=&board_seq=41581&page=37&board_code=.(검색일:2023.10.20.)임영걸.2016.”『 사토시”의 재검독-키워드”사대부”을 통해서 93. 대동 문화 연구.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91968 .(검색일:2023.11.3.)<사진출처>섬네일.ⓒ 세계 일보 1. ⓒ 세계 일보 2.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3. ⓒ 역사 저널 그날 4. ⓒ 역사 저널 그날 5. ⓒ IUSS caster<참고 자료> 네이버 블로그. 2018년 5월 23일 역사저널 그날 제23대 순조-저항의 시대를 열다 (2) : 지역차별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평안도”. https://m.blog.naver.com/sheshow/221245679465 (검색일 : 2023년 10월 19일) 한국역사넷. 2011. 신편 한국사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6_0040_0010_0010_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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